<정동칼럼> 지방선거와 히딩크 |
[경향신문]|2002-05-31|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963자 |
월드컵 개막일에 즈음하여 전국이 축구 열기로 뜨겁다. 세계 정상급인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나타난 한국 축구의 괄목상대할 기량 향상에 모두가 한껏 고무되어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으로는 우리(41위)가 포르투갈(6위), 미국(13위), 폴란드(16위)의 벽을 넘보기 힘든 상황인데도 히딩크 사단의 신화 창조에 거는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다.16강 진출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한국 축구의 진면목이 일신된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1년 반 동안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낸 히딩크 감독의 안목과 지도력에 대한 관심이 드높다. 히딩크는 한국 축구팀을 조련하면서 선수들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편견을 버렸다. 유명도와 인기를 선수 선발의 척도로 삼지 않고 기량 위주의 평가에 의해 대표팀 명단을 작성했다. 또한 프로축구와 실업경기, 대학경기를 찾아다니며 숨어 있는 무명 선수를 발굴하는데 주력했다. 4년 전 프랑스 월드컵기간 중 대표팀 사령탑에서 중도 하차한 차범근은 한국 축구계의 현실에 대하여 폭탄선언을 한 적이 있다. 축구계에 승부 조작이 성행하고 음성적인 뒷거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폭탄선언의 진위 여부는 말끔하게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차범근의 발언이 청정무구의 축구계를 악의적으로 비난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되돌아볼 때 히딩크의 강점은 학연.지연의 굴레에 빠질 염려가 없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체력 강화라는 구조적인 접근방법이 보태어졌으니 한국 축구의 경기력은 진화를 시작할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셈이다. 지방선거가 월드컵의 열기 속에 묻혀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4년간 각 지방의 행정을 맡을 수장과 이를 견제할 지방의원들을 뽑는데 관심을 가진 유권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느낌이다.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은 선거과정에 불법과 타락이 스며들 빈틈을 열어준다. 더욱이 당선자는 별다른 공복의식과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임기동안 소신껏 지방 행정을 끌고 나가기도 쉽지 않다. 그 결과 민선 1기, 2기 단체장들처럼 부정부패와 관련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지방자치제의 존치 이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를 지워버리기 힘들다. 히딩크가 한국 축구의 조련사로 영입된 것은 축구 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도 관심과 정성이 없으면 제대로 자라나기 어려운 법이다. 우리는 프로야구와 축구 경기는 열심히 보면서 정치토론 프로는 외면하기 일쑤다. 이번 월드컵 개최 기간에도 멋진 슈팅이 아파트촌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아도 우리가 골을 넣었는지 여부는 깨어만 있으면 바로 알 수 있다. 온 동네가 한때 높은 탄성이 났다가 사라지면 그것은 슈팅이 골대를 빗나간 것이고,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1분여 계속되면 우리가 골을 넣은 신호다. 우리의 정치구조가 후진적이라면 그 원인의 대부분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정치인들이 나와 어떤 공약을 밝히든, 정책 구상이 무엇이든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평가와 심판은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이 신뢰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온 탓에 정치에 염증을 느꼈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의 목표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다. 지방선거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목표는 주민자치에 걸맞은 민주적이고 알뜰한 살림살이로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지방 선량을 뽑는 것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목표에 다가가는 첫걸음은 히딩크와 유권자가 각각 선수와 선량을 뽑는데 만전을 기하는 일이다. 정치수준을 높여 세계 16강의 정치선진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히딩크의 고민과 안목으로 정치 선량을 골라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군소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무소속 후보 등 제3세력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유권자들은 히딩크 감독이 무명 선수를 발굴하듯 후보자들의 됨됨이를 면밀히 살펴 옥석을 가려내고 숨어있는 진주를 캐내는데 정성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강병국 / 변호사 bkk@henemlaw.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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