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칼럼

이젠 '국력 4강'으로

강병국변호사 2011. 6. 3. 00:18

<정동칼럼>이젠 '국력 4강'으로
[경향신문]|2002-06-21|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957자
태극전사들의 월드컵 8강 진입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준 쾌거였다. 함부로 단언키 어려웠던 16강 진출에 이어 감격의 역전극으로 세계 8강의 반열에 오른 우리 축구대표팀의 위업은 대한민국의 저력과 국력 신장의 표상으로 여겨진다.그러나 한편에서는 월드컵 기간 중 중국이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서도 오히려 적반하장격 주장을 늘어놓음으로써 주권국가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 장면도 중첩된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베이징 주재 우리 공관에 지난 13일 중국 공안요원이 무단 침입한 것과 관련하여 우리측의 요청에 따라 진입한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외교관 폭행도 우리측이 공무집행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폈다. 뒤늦게 양국 외무장관의 합의에 의해 이 문제에 관한 협상이 본격화할 예정이지만 중국이 외교공관 불가침권을 무시한 명백한 국제법 위반사범에 대하여 궤변을 늘어놓은 배경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 탈북자 처리의 미묘한 성격 등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총체적 국력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기억에는 한국이 강대국들과 실질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우리의 역사는 강대국에 휘둘리는 예속과 핍박의 기록으로 점철된 것이라는 인상이 짙다.

일부 외국 언론이 4백만명을 넘는 감동의 거리응원 인파에 대하여 집단 히스테리라고 논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집단 히스테리란 평소 억눌려 있던 자아가 집단적으로 표출되면서 정신적인 해방감을 얻고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즉 그동안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불평등을 강요당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의 자존심이 구겨졌고, 이러한 잠재된 스트레스가 축구 대표팀의 선전에 힘입어 집단적으로 분출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대교린이 약소국의 외교정책이었던 왕조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주권국가 평등의 원칙이 확립된 공화국 시대만 되돌아보더라도 우리의 국가 위상은 강대국들의 횡포에 주눅드는 일이 많았다. 실제로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서 나라의 위신과 독립성을 손상당하여 심기가 편치 않았던 경험이 적지 않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비자를 받으려는 여행객들을 줄세우는 장면이 그렇고, 미국이 수시로 통상 압력을 가해 반도체.철강.자동차 등의 대미 수출을 현대판 조공무역으로 만들어 가려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올들어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 후 뚜렷한 근거도 없이 차세대 전투기를 미국 보잉사의 기종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국민 개개인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일본은 걸핏하면 독도 문제로 우리의 속을 뒤집어 놓고, 역사왜곡 발언으로 자신들의 침략사를 호도하려 한다. 엄연히 양국간 어업협정이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그은 직선기선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한국 어선을 나포하고 어부들을 폭행한 사건도 기억에 생생하다. 일본은 이때 양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나포 자제를 공식 요청받고도 며칠 후 또다시 우리 어선을 나포하는 무도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한.일 청구권 협상과 그 후 일왕(日王)의 방한 때 '유감' '통석' 등의 미온적 사과에 접하면서 우리가 느낀 것은 분노와 굴욕감이다.

40대 이상의 연령층은 세계 열강에 휘둘려온 조국의 역사에 의해 심리적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광복군으로 활약했던 한 국가유공자는 '이 나라가 아직 독립국가가 아니다'라고 천명한 적도 있었다. 같은 공간에 몸담은 젊은 세대도 철들면서 약소국에서 태어난 설움과 함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대 이상의 전적을 올리고 있으니 모든 국민이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국민적 에너지의 분출이 과거사의 설움에 대한 한낱 한풀이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국력의 실체에 대한 뼈아픈 인식이 필요하다. 또한 응원의 붉은 물결을 국가 도약의 원동력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의 역할이 더욱 아쉬운 오늘이다.

강병국 / 변호사bkk@henemlaw.com

'언론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반의 정치' 종지부 찍자  (0) 2011.06.03
지방선거와 히딩크  (0) 2011.06.03
'깜짝 쇼와 면피' 법치는 없다  (0) 2011.06.03
돈의 사회학  (0) 2011.06.03
전문가를 따돌리는사회  (0) 201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