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깜짝쇼와 면피' 법치는 없다 |
[경향신문]|2002-07-12|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2044자 |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들이 요즘 우리의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때문에 대통령의 아들들이 줄줄이 구속 수감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 행사의 부작용을 여전히 망각하고 있는 모습이다.김대중 대통령은 도로교통법 위반 사범에 대한 대사면을 단행함으로써 제왕적 권력의 막강한 힘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자랑했다. 이번 사면조치에 대하여 곳곳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대사면을 단행한 취지가 월드컵 4강 신화를 기념하고 서민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많은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깜짝쇼와도 같은 대사면의 돌출 카드를 꺼낸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사면권은 왕정 시절의 군주가 백성에게 은전을 베풀 수 있는 권한을 가졌던 것의 역사적 유물이다. 공화정이 확립되면서 군주의 무제한적인 사면권은 비판을 받아 권한의 폭이 축소되긴 했지만 각 국은 대체로 이러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형사사법 제도의 경직성, 즉 세상만사를 획일적인 법률에 따라 처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결론을 교정하고, 형 집행에서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를 고려할 필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사면권은 역사적 유물이라는 그 본질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민주국가의 권력분립 원리를 훼손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기준과 원칙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 즉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전가의 보도처럼 행사되어서는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민주주의의 기본 골격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번 사면조치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듯 사면이라는 용어 대신 특별감면 조치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면조치는 법원이 선고한 형을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가 도로교통법 위반자에 대하여 내린 면허 취소나 면허 정지처분 또는 벌점 부과처분을 면제한 것으로 통상적인 사면과는 그 내용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행 도로교통법이 음주 측정을 거부하거나 음주 운전으로 3회 적발된 자에 대하여는 반드시 운전 면허를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이번 조치는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침해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지방경찰청장은 음주 운전으로 3회 적발된 자에 대하여 운전 면허를 취소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재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지방경찰청장은 도로교통법상 반드시 '3진 아웃'을 적용하여 운전면허 취소처분을 내려야 한다. 만약 취소처분을 내리지 않으면 그러한 행위는 위법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6월30일 이전에 음주 운전으로 적발되어 3진 아웃에 해당된 경우라도 아직 지방경찰청장이 운전 면허를 취소하기 전이라면 면허 취소를 하지 않고 면허증을 반납해 준다는 내용으로 현행 도로교통법의 규정에 정면으로 저촉된다. 교통범칙자 4백81만명에 대한 대사면이라는 초법적 조치에 또 하나의 탈법적 장면이 중첩된다. 검찰이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전.현직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거액의 용돈을 받아 쓴 것을 눈감아 주기로 했다는 부분이다. 전직 국정원장이 홍업씨에게 수표로 준 휴가비와 용돈이 드러난 것만 2천5백만원이고 현직 국정원장도 1천만원을 주었는데, 이는 공소사실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법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국정원장의 연봉은 현 공무원 보수규정에 의할 때 7천2백82만원이다. 월 6백7만원 정도다. 그런데 국정원장이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개인 돈을 대통령 아들에게 용돈으로 주었다는데, 검찰은 판공비로 지출하였을 가능성을 짐작 못하는 바 아니지만 덮어버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공비를 대통령 차남에 대한 격려금이나 용돈으로 지급하였다면 이는 공금의 유용에 해당할 것인데, 검사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면서도 수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은 탈법적 발상이 아닌가. 제왕적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힘 자랑과 제왕적 대통령을 호가호위한 그 아들과 그것을 수사하는 검찰의 자세 그 모두가 법치의 영역과는 딴 곳에서 맴돌고 있는 모습이다. 강병국 / 변호사 bkkang7@net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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