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칼럼

감춰지지 않는 북파공작원

강병국변호사 2011. 6. 3. 00:13

<정동칼럼> 감취지지 않는 북파공작원
[경향신문]|2002-10-04|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2075자

좌우 이념 대립의 종식이 가져온 변화상에 우리 사회는 아직 정리된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 땅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에 남북한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한 것에 대해 찬반 여론이 분분하고, 북의 미녀 응원단에 대해 역시 남남북녀라고 감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관제화된 '북녀'일 뿐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한 풍경 속에 북파 공작원의 시위와 대북 비밀지원설이 실루엣으로 겹쳐지고 있다.몇 해 전만 해도 우리는 20세기 후반기 동서 분쟁의 최전방에 위치하여 반공을 국시로 삼았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생산한 유럽은 공산당에 관대했지만 우리는 뿌리없는 이념의 수입국으로서 동서 분쟁의 전위부대가 되는 역설의 땅에서 살아왔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국가제일주의 교육에 젖어왔다. 이념의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아 사상의 외눈박이가 되었다. 양담배를 피우는 것이 매국노와 같이 취급되었고, 국산품 사용을 애국의 길로 삼아왔다. 전쟁의 상흔과 이산의 아픔은 물론이고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환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데 동서 이념 분쟁이 끝나자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과 수교하고 북괴가 북한으로, 중공이 중국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하여 북의 김정일에 대한 호칭과 평가가 괄목상대하게 바뀌었다. 이른바 햇빛정책이란 국가 시책이 동일인에 대한 평가를 판이하게 바꾼 것이다. 제주 4.3사태에 관련된 사람들,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귀신잡는 따이한'이 잡았던 것은 베트콩인데, 베트콩은 지금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국가는 한번도 보편적 관점에서 이러한 과거의 시행착오를 솔직히 국민에게 고백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염화시중의 미소를 읽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났는가. 국가의 침묵은 국민에게 이러한 현란한 변화상을 독자적인 해석력으로 소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유년기를 보낸 우리들은 그 해명이 없고서는 혼란감을 씻을 길이 없다.

국가는 법률적으로는 공법인이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그것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는 저열한 인격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국가 역시 법률적으로 인격이 주어져 있으므로 거짓말에 대하여 자기 고백을 해야 한다. 국가는 사회의 조직된 활동단위라고 한다. 사회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행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 국가이다. 국가는 평등을 지향하고 사회는 자유를 지향한다고도 한다.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최소한 국가는 사회보다는 '좀더 나은 양심'을 가져야 한다.

북파 공작원들의 시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파 공작원의 존재 사실을 사회에 공개하고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다. 정부는 뒤늦게 이들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북파 공작원의 실체와 활동상황에 대한 확인은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감추려 한다고 감춰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1971년 북파 공작원들이 훈련중 비인간적 대우에 절망해서 벌인 것이 '실미도 사건'이다. 정부가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는 한, 분단의 또다른 희생양인 북파 공작원들의 호소는 쉽사리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대남 공작원과 대척점에 있는 이들을 인정하면 북측에 공격의 구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남파 간첩이 있듯이 북파 간첩이 있었음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측 또한 남파 간첩의 존재는 부인할지라도 북파 간첩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므로 북파 공작원의 존재를 공개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비밀이 많은 국가, 거짓말이 횡행하는 사회는 민주적 토양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다. 국가는 구성원의 행복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의 조직된 부분이다. 비록 현실사회에 거짓말이 통용되고 있고, 음습한 비밀이 서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거기에 부화뇌동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만약 국가 운영에 비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동의를 얻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좀더 솔직하고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강병국 / 변호사bkk@henem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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