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아름다운 정치인'이 그립다 |
[경향신문]|2002-10-25|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2073자 |
사람을 평가할 때 개개인의 신언서판(新言書判)뿐만 아니라 집안을 보는 이유는 그가 자라온 환경을 염두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개인의 품성 형성에 가정의 분위기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개천 출신 용의 성장환경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도약의 비밀 설계도가 개천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노골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전직 대변인들이 한때 공격과 비난의 표적으로 삼았던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는가 하면, 정치권을 일신할 세력으로 각광을 받았던 386세대의 대표격인 김민석 전의원이 정몽준 신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민주당 내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소속 의원들이 이미 탈당을 결의한 상태이고, 자민련 의원들도 '4자 연대'안이 무산된 상태에서 판세를 저울질 중이다. 바야흐로 정국은 '헤쳐 모여'의 형국이다. 5년 전 이맘 때의 신문을 들춰보자. 정당의 이름과 후보자에 약간의 변동이 있을 뿐 전체적인 구도는 합종연횡을 모색하는 오늘의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당시의 정국 구도는 여당인 신한국당의 경선에 불복한 이인제 의원이 국민신당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YS의 측근인 신상우 의원이 주도한 국민연합파가 범여권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경선 후보인 이회창 총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인제 의원의 탈당과 신당 결성 추진으로 여당 지지표가 분산되자 신한국당은 친이(親李) 진영과 반이(反李) 진영으로 양분되었다. 당시 여당이 이처럼 분열된 것은 몇 달 동안 잠재적 위협으로 작용했던 DJP연합이 가시화된 때문이었다. 야권은 이 무렵 이른바 DJP연합이 거의 성사단계에 있었고, '후보자에 대한 매수'로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시비 속에서 그 해 11월초 DJP 후보단일화가 공식 선언되었다. 이 장면은 오늘의 여권이 분열된 과정과 너무나 닮았다. DJP연합이 유권자들의 지지도에서 오차한계 이상의 우위를 점하자 당시의 여당인 신한국당에 난기류가 생겼던 것처럼 세 불리 속에서 나타난 정몽준 변수가 민주당에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반노 세력을 등장시켜 여당을 양분시킨 것이다. 대선정국 드라마의 조연격인 박근혜 의원에게 커밍콜을 던지고 있는 것은 5년 전 조순 후보에 대한 다른 후보들의 연대 모색과 흡사한 장면이기도 하다. 정치권의 이러한 지각 변동을 보면서 정치의 수요자들이 갖는 느낌은 실망과 분노와 냉소로 요약된다. 정치 역학의 중심축은 분명 이념과 명분이 되어야 할 것인데, 오늘 이 땅의 정치권은 이익집단의 행동지침인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 정치인들의 행동양식을 이렇게 만든 것은 계승할 만한 정치적 전통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3당 합당'의 전통이 어디 가는가. 세계 정당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여당과 야당의 야합인 3당 합당의 경험까지 갖고 있는 이 땅의 정치인들은 정치적 운신에 거침이 없다. 여야의 문지방을 명분도 상상력도 동원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구국의 결단'이라던 3당 합당의 결실이 무엇인지, 내각제 개헌을 위한 DJP연합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가 되고 3김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선정국의 흐름이 과거와 유사한 구도로 치닫고 있는데서 후진적 정치사의 뿌리깊은 작용을 본다. 정치인들은 정치권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양지를 쫓는 이합집산의 정치문화를 그대로 배우고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명분 없는 당적 변경은 변절일 뿐이다. 정치판에서 성행하는 변절의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회의 청렴도와 도덕성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 선량으로 통하는 정치인조차 그렇게 하는데 시중의 갑남을녀가 변절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있겠는가. 유권자들을 모독하는 이러한 정치판의 왜곡된 행동양식을 교정하는 길은 변절한 정치인을 차기 총선에서 기필코 낙선시키는 유권자의 결단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양지를 향한 변절을 단연코 거부하고 손해를 보면서도 명분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정치인이 더없이 아쉬운 시절이다. 강병국 / 변호사 bkk@henemlaw.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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