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투기시대' 최부잣집 교훈 |
[경향신문]|2002-03-08|07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833자 |
겨울을 나는 사이에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정부가 뒤늦게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서민들의 내집 마련에 대한 절망감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다. 계약 기간 만료를 눈앞에 둔 서민들은 올해 집주인이 전세금이나 월세를 얼마나 올려달라고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집세는 엄연히 불로소득이다. 부동산 값 폭등이 국민경제 성장에 백해무익함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재건축 열기를 타고 서울 강남을 필두로 집값이 이상급등한 것도 병리현상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집값의 상승 메커니즘에는 거간꾼의 농간과 이에 편승하는 가진 자의 부도덕이 깔려 있다. 가치관이 실종된 사회에서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는 천민자본주의 의식이 곳곳에서 나라를 좀먹고 동시대인들을 옥죄고 있다. 가치관은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 삶의 입체적 지도를 바로 읽게 해 주는 독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교훈을 얻어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고 이를 후손들에게 가치관이라는 불문율로 물려준다. 그러나 이 땅의 현대사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기 어렵다. 변전(變轉)과 굴절로 점철된 지난 100년 그 역사의 탁류를 바른 마음가짐으로 걸러내고 시시비비를 가려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국회의원들이 최근 친일파 명단을 발표한 것을 놓고도 예의 딴죽걸기가 고개를 치밀어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아 보자는 제안에 흙탕물을 끼얹고 있다.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한 것은 우리 현대사의 원죄라고 할 수 있다. 민주공화국을 세운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부패공화국'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한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면 과언일까. 1949년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파로 지목돼 실형을 선고받은 자는 단 7명이고, 그나마도 몇 개월만에 모두 석방된 사실이 우리 현대사의 치부가 아니고 무엇인가. 단죄를 모르는 역사는 가르침을 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부도덕과 몰상식이 판치고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실천의지가 희박하게 된 것도 과거사에 대한 청산과 정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평가할 때에도, 박정희를 평가할 때에도 언제나 딴전을 부리는 일각의 훼방꾼들 때문에 논의의 폭은 접점을 이루지 못한 채 유산되기 일쑤다. 과거 청산이 미뤄지는 속에서 구성원들은 올바른 삶에 관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온갖 부정부패와 사회적 악습이 추방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추종의 대상이 된 듯한 분위기다. 장삼이사들의 뇌리엔 "감옥 갔다 와야 큰 인물 된다"는 시쳇말이 촌철살인의 지당한 말씀으로 여겨진다. 가치관이 전도되었기에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야합이 성사될 수 있었고, 반란군과 동침한 세력이 문민정부를 표방하여도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 정계 은퇴선언을 통해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사람이 3년도 채 안돼 이를 번복하고 정계 복귀를 통해 '저 높은 고지'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사술이 횡행하는 세태의 씁쓸한 반영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할 일은 분명하다. 자기반성과 고해성사가 사회적 모순에 맞서 싸우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가진 자들이 할 일 또한 분명하다. 경주 최부잣집은 12대 동안 만석을 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이 가문이 '3대 이상 부자없다'는 속설을 딛고 1960년대까지 만석꾼을 유지했던 것은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에 논 사지 마라' 등 상생의 가훈을 굳게 지켜나갔기 때문이다.최부잣집은 소작료를 낮추는 방식으로 재산이 만석을 넘는 것을 막았다. 소작인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 할지라도 최부잣집이 땅을 사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최부잣집이 흉년에 논을 사지 않은 것은 헐값에 논을 넘긴 사람들에게 원한을 살 일을 삼간 것으로 이는 부(富)의 도덕성을 지키는 지혜였다. 집세 폭등 속에서 가진 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이야기이다. 강병국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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