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칼럼

국가 시책의 선택 기준

강병국변호사 2011. 6. 2. 23:56

<시론>국가 시책의 선택 기준
[경향신문]|2003-03-26|11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887자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직장을 옮길 것인가 말 것인가, 이번 주말에 등산을 갈 것인가 낚시를 갈 것인가 등등. 이런 유형의 선택 상황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고 선택에 따른 불이익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로 생각된다. 한편 수능시험이나 여러 해 준비해온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 병상의 부모님이 임종을 맞이할 경우 시험을 보러갈 것인지 여부는 위의 유형과는 좀 다른 갈등상황을 조성한다. 양자택일은 가능하지만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희생이 대단히 크다.그런데 만약 다음과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신용카드 대금이 연체되어 자신은 물론 보증을 선 친구까지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했을 때 때마침 수중에 들어온 회사 돈을 횡령할 것인지 여부, 수술비가 없어 사경을 헤매는 가족이 있는데 달리 돈을 구할 방도가 없을 때 도둑질을 할 것인지 여부 등등. 양자택일로는 해결되지 않는 선택 상황의 한 유형이다.

어느 유형의 선택 상황이든 우리는 결정을 할 때 부지불식간에 비교를 거쳐 이점이 많거나 희생이 적은 방안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이익을 저울질해 본다는 뜻의 이른바 이익형량(利益衡量)이라고 부른다.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달이 지나는 사이에 여러 가지 국가적 이슈들을 둘러싸고 찬반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새정부의 각료 임명에 즈음하여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졌고, 대북 송금과정에 관한 특별검사 임명에 관한 법률안의 공포를 둘러싸고 역시 논란이 분분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지 표명을 놓고도 반대 여론이 끓어 올랐고, 한총련 합법화 문제,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수사결과 발표 등도 역시 논란을 일으켰다.

이중국적은 장관이라는 고위 공직자의 애국심과 세계화 시대의 인재 확보 방책이라는 두가지 가치가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로 생각된다. 단일국적에 의하여 표상되는 애국심이라는 가치는 전통적인 것이긴 하지만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보편성이 떨어진다. 또 단일국적 자체만으로 애국심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 점에서 실효성도 떨어진다. 새정부의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중국적 시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익형량에 근거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북 송금에 관한 특검법안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에 의하여 저지되지 않고 그대로 공포된 저간의 사정 역시 특검법이 갖는 진실 규명이라는 이익과 특검에 의하여 초래될 수 있는 대북관계에서의 불이익을 저울질한 결과일 것이다.

한총련 합법화를 둘러싼 논란은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단된 기존 상태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남북관계에 획기적 진전이 이루어진 만큼 시대 변화를 고려하여 우리 사회의 해묵은 숙제에 관하여 전향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기존 상태 존중이라는 가치와 시대 변화를 고려하여 다른 견해를 가진 집단을 제도권 내로 통합하는 가치 사이에서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에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저울추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 문제의 선택에서 이익형량에는 개성이 작용해도 무방하지만 사회적.국가적 문제의 선택에서는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하여 지지를 표명한 것은 보편적 가치를 저버린 사례로 보인다. 평화는 인류 보편의 가치인데 비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함으로써 북핵 문제에 관하여 선처를 받는 이익은 확실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여기엔 약소국으로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큰 우리의 현 위상이 이익형량을 그르치는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정부가 이러한 약소국의 설움을 깊이 깨닫고 월드컵 4강이라는 명성이 총체적 국력의 실상이 될 수 있도록 국민적 역량을 집결시키는 명연출가의 역할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해본다.

강병국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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