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땜질 처방 언제까지 |
[경향신문]|2003-02-07|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2073자 |
로또복권만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참으로 한심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로또복권의 1등 당첨자가 없을 경우 최대 5회까지로 정해져 있던 당첨금 이월횟수를 앞으로는 2회까지로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월횟수 2회 제한은 7회차, 8회차에 1등 당첨자가 없어 이월되고 있던 당첨금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9회차, 10회차, 11회차에 1등 당첨자가 없을 경우 이달 22일의 12회차 추첨 때까지 당첨금이 이월될 수 있었다. 만약 12회차에도 1등 당첨자가 없는 경우 2등 당첨자에게 그동안 이월되어 누적된 당첨금을 균등 분배하는 내용이었다.그런데 정부는 설날인 지난 1일 복권발행조정위원회를 열어 이러한 당첨금 이월에 다시 변경을 가했다. 즉 7회차 이후에 1등 당첨자를 내지 못한 채 진행되어 온 로또복권의 당첨금 이월을 10회차로 종료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당첨금 이월횟수를 현재 진행중인 복권에 대하여 3회로 제한한 셈이다. 갑작스런 당첨금 이월횟수의 제한에는 적지 않은 법률적 흠이 있다. 로또복권을 사기 위한 OMR 카드의 뒷면에 적힌 복권 설명서는 복권 발매자가 복권 구입자에게 제시한 매매계약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다수의 복권 구입자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체결되는 계약에 쓰이는 것이므로 보통거래약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1등 당첨자가 나온 후 이월금 없이 발매되는 복권에 대하여 이월횟수를 2회로 제한하는 것은 모르지만 현재 당첨금이 이월되어 진행 중인 복권에 대하여 당초 복권 구매자와 약정한 이월횟수 5회를 갑자기 3회로 제한하는 조치는 계약 위반의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회차마다 로또복권 구입 계약이 새로 체결되는 것이고, 이번 주말에 추첨될 10회차 복권은 발매하기에 앞서 당첨금 이월이 10회로 종료됨을 예고하였으므로 계약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7회차 이후 계속 로또복권을 구입한 사람은 1등 당첨자가 없으면 최대 5회, 즉 11회차까지의 당첨금이 이월되어 12회차의 당첨금이 될 것으로 믿었다. 복권 구입자의 이러한 신뢰를 중시한다면 정부가 설날 취한 조치는 복권 발매자가 일방적으로 복권 매매계약의 내용을 소급적으로 바꾼 것이다. 누군가가 복권 발행기관을 상대로 계약 위반을 문제삼는다면 발행기관의 입장은 매우 궁색해질 것이다. 이미 세계 60여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로또복권을 도입하고서도 시행착오와 땜질식 처방을 되풀이하는 것은 정부의 무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로또복권이 국민들에게 일확천금의 환상을 심고, 인생 역전의 헛된 꿈을 안겨주는 것은 아닌지 고심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공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분 하나로 복권을 발행하고 수익금을 국민주택기금(35.6%), 과학기술진흥기금(19.1%), 중소기업진흥기금(10.1%) 등에 사용키로 배분율을 정했지만 정작 수익금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사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초적인 당첨금 이월횟수조차 엉성한 짜임새로 출발한 것을 보면 앞으로 수익금의 사용처 등이 의혹과 논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대북 송금 문제도 한심한 정부라는 인상을 더욱 짙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해 9월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현대상선과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들은 북한에 1달러도 준 사실이 없다고 대북 비밀지원설을 전면 부인했다. 오히려 이 문제를 제기한 한나라당에 정략적 공세라며 역공을 퍼붓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실체의 일부가 드러나자 이번에는 진실의 공개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국민을 속이고 그 속임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의혹을 제기한 측에게 정치공작이라는 비난을 가한 측이 이제는 국익을 운위한다면 자가당착이다. 남북관계에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사안에 대하여는 비밀 유지의 이익이 공개의 이익보다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공개로 둠으로써 각종 억측이 무성해진다면 국익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조변석개하는 로또 정책과 대북 송금에 관한 정부의 말 바꾸기는 새 정부 개혁에 타산지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강병국 변호사 bkk@henemlaw.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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