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칼럼

내실있는 개혁을 바란다

강병국변호사 2011. 6. 3. 00:04

<정동칼럼>내실있는 개혁을 바란다
[경향신문]|2003-01-17|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2074자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는 언제나 큰 법이다. 정부 교체기에 나타나는 새정부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일거수 일투족이 연일 주요 뉴스로 취급되고 있다. 그 속에서 정부 각 부처의 인수위에 대한 줄대기나 눈치보기가 성행하고, 인수위의 의욕이 지나쳐 월권을 하고 있다는 시비도 벌어지고 있다.대통령직 인수위의 활동을 둘러싼 이러한 논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5년 전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때 대통령직 인수위의 안기부 업무 인수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10년전 김영삼 정부의 출범기에도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인수위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비슷했다. 당시에는 대통령직 인수위라는 것이 처음 생긴 기구여서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의구심도 컸고, 집권당 쪽의 견제심리도 강했다.

현재 가동중인 대통령직 인수위가 신권력에 줄을 대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월권 시비와 함께 불필요한 잡음을 낳고 있는 것은 인수위의 역할과 그 한계가 법제화되지 않은데 주된 원인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인사 청탁을 하는 사람에게는 패가망신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천명했는데도 이러한 줄대기 습성이 재연되고 있는 이유는 표리부동한 이 나라 권력의 속성이 달라졌다고 믿는 공직 후보들이 아직은 적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설치 근거법률에 대하여 정치권이 10년 동안 그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아직까지 법을 제정하지 않은 것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단적인 사례이다. 10년 전과 5년 전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하나같이 인수위 활동을 마감하면서 인수위의 설치근거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처럼 10년 전에 이미 제정되었어야 할 이 법률안이 현재 국회 심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직 인수법과 국정원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법을 연계 처리한다는 당론 아래 지난해 말 인수법의 국회 통과를 보류해 둔 상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수위는 현 정부와 차기 정부간의 가교 역할을 하면 충분하다. 국정 공백을 예방하는 역할만 하면 되므로 법률 제정에 여야간 이해 충돌의 여지도 거의 없다.

국민 의사에 따른 정권교체의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의 등장은 민주화의 한 상징으로도 비쳐진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러한 민주적 정권교체의 필수불가결한 기구에 관한 법률적 근거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민주화가 외화내빈의 졸속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정부도 개혁을 표방하지 않은 정권은 없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민주화의 내실, 개혁의 내실을 기하지 못한 탓이다. 대학입학시험에서 소수점 이하 반올림이 당락을 역전시키는 부조리를 알면서도 방치한 교육제도 아래에서 새로운 개혁을 논의할 상황인가. 새로운 것은 일단 접어두고 일상적인 정책의 기초부터 재점검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에게 예산으로 떡값을 주는 관행이 있었다는데, 그 실태를 밝혀 공개하지도 않은 채 부패방지 대책을 운위할 수 있는가. 허위의식과 표리부동이 판치는 현실에서 소리높여 외치는 개혁의 화두는 그 자체가 부패의 위장술로 의심받기에 족하다.

노무현 시대의 개막이 민주당이나 DJ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닌데도, 대선이 끝난 직후 해가 바뀌는 틈을 타 특별사면을 단행한 것은 현 정권의 상황 인식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비근한 사례일 것이다. 대선 정국에서 첨예한 공방거리였던 대북 4천억원 비밀지원설의 열쇠를 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4개월 만에 귀국하여 바로 정부의 승인 아래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을 납득하긴 쉽지 않다. 국정원의 도청 의혹사건이나 대북 비밀지원설의 진위를 가리지 않고서는 새 정부가 DJ 정부의 부채를 청산할 길은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설치 근거법률 제정이 10년 동안 방치되어 온 장면에서 보듯 미래를 위한 준비와 개혁의 내실을 기하는 조용한 손길이 없고서는 정부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선동이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공원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이웃을 위해 비탈길에 쌓인 눈을 치우는 마음가짐으로 손에 잡히는 목표를 차분히 추구해야만 진정 성공한 정부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강병국 변호사
bkk@henem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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