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칼럼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사회

강병국변호사 2011. 6. 2. 23:50

<정동칼럼>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사회
[경향신문]|2003-04-11|1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2011자
솔직히 나는 역대 대통령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준 바 없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빼앗겼던 선거권을 되찾아 그동안 4차례 행사한 나의 한표가 당선자를 맞힌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수십년간 계속되어온 청와대의 권력 남용을 경험해 온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설혹 당선자를 맞힌 적이 있었다고 한들 그를 무턱대고 믿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사실 대통령만 못믿는 게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이 불신의 대상이다. 왜 사람을 못믿느냐고 탓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사람을 믿는 것과 공익의 담당자를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응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민주주의는 권력분립을 기초로 하고 있고, 권력분립은 인간성에 대한 회의의 산물이다. 인간이 천사가 아닌 다음에야 권력을 쥔 사람은 권력의 맛에 도취하여 정도를 벗어나기 쉽다. 권력분립에서 우러나오는 견제의 원리는 이러한 권력의 궤도 이탈을 막는 장치에 다름아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권력 감시와 통제장치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몇년 만에 재수사하고 있는 이른바 세풍사건을 보라. 당시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징세권을 쥔 국세청과 힘을 합쳐 정치자금 모금 외에 정당 살림을 위한 후원금 납입을 독촉하는 일까지 했다는 것이 검찰의 발표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인 이회창 전 총재의 개입 여부는 밝혀내지 못하는 등 검찰 수사결과는 여전히 미진하다. 만약 지난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면 세풍 수사는 더욱 부실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미국으로 도피한 이유도 그것을 노린 것이니까.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과 관련하여 돈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벌이고 있는 말바꾸기는 또 어떤가.

많은 식자들은 우리 사회의 약점으로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이 부실하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점을 이야기한다.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 한 개혁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고, 역대 정권의 반복된 개혁 추진에 피로감만 느끼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사람만 바꾼다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는 않는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만 갖추고 있다고 해서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기업 내부의 이사회와 주주총회, 생산조직과 소비자단체 등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상호 독주를 막고 부정과 비리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짜여져야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실태는 어떠한가. 대통령과 국회 사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힘의 불균형, 지배주주의 독선적 기업 경영, 관치금융 낙하산 인사에서 나타나는 정부와 민간부문간 힘의 불균형 등 사회 각 부문에서 힘의 불균형 구도가 더 두드러진다.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자살 사건도 새로운 교육을 부르짖는 전교조와 기존 교권세력 사이에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로 보인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역시 따지고 보면 국제정치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다. 유엔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이 독단적인 전쟁 불사 방침을 밀고 나감으로써 유엔의 위상은 실추되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의 실체는 강대국의 처지를 정당화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확인한 것이다. 앞으로 세계평화 유지에 대한 유엔의 역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대목이다.

국가권력의 요체는 군사력.형벌권 등으로 대표되는 물리력과 징세권으로 대표되는 자금 수취권으로 나눠볼 수 있다. 국민은 대통령 등 공직자에게 공익용으로만 쓴다는 조건 아래 이러한 권력을 위임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성과 권력의 속성상 위임된 권력이 사익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사익을 위해 쓰이는 권력은 이미 공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이러한 권력 행사의 궤도 이탈을 막아 권력이 폭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일 것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다수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공명정대하게 해결하기 위한 방부제이자 신뢰의 토양이다. 노무현 정부가 넥타이에서 절제의 문법을 읽는 능력으로 사회 각 부문에 견제와 균형의 그물망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바란다.

강병국 변호사 bkk@henem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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