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국가를상대로 63년만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강병국변호사 2013. 2. 3. 16:18

[요지] 1946. 10. 발생한 대구10월 사건과 관련하여 1949. 6.경 경찰에 의하여 사살된 망인의 부인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는 망인의 부인에게 3억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판결 (부산지방법원 2013. 1. 16. 선고 2012가합9228 손해배상(기) )

 

1946. 10. 1. 발생한 대구10월사건 관련자인 정모씨의 동생이 경찰의 감시를 받다가 1949. 6.초순 경찰에 의하여 사살된 사건과 관련하여 그 유족인 사실혼 관계에 있던 부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법원은 망인의 위자료를 3억원, 부인의 위자료를 1억5천만원, 망인의 자녀의 위자료를 9천만원으로 산정하여 피고는 원고에게 3억3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함.

 

위 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과거사 청산을 목적으로 하여 주로 간접증거나 전문증거에 의존하여 내려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만으로 망인을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고, 설령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그 주장처럼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였다 할지라도, 원고의 이 사건 소는 망인 및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될 무렵인 망인의 사망일을 기준으로 5년이 훨씬 지난 후에 비로소 제기되었으므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하였음.

 

이에 대해 법원은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상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설립목적과 그 법적 성격, 진실규명결정에 대한 불복절차의 내용과 그 결정의 효력, 그 결정에 따른 국가의 의무 및 후속조치 등에 관한 전반적인 규정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위 법률에 따라 설치된 독립된 기구이기는 하지만 당해 위원회를 행정청이나 이에 준하는 기관으로 볼 수 없는 이상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 진실규명결정이 구속력 있는 행정처분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그 결정에서 희생자로 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당연히 그러한 자들을 희생자로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또는 당해 결정에 추정력이 발생하여 국가가 반대사실에 관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 과거사정리위원회도 법률에 정해진 권한과 업무 범위 내에서 사실 조사를 하고 결정을 내리는 이상,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도 희생자인지 여부에 관한 증거가 될 수 있고, 이 사건은 국가적 혼란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에 의해 다수의 피해자들이 집단적·조직적으로 연행되어 적법절차 없이 살해된 사건이 대부분이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통지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유족들이 피해자들의 사망 여부나 사망 경위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로부터 이미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유족들이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려우므로, 법원은 위 진실규명결정의 내용과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확보된 공부상 기록 및 위 조사과정에서 작성된 신청인 및 목격자 등 참고인에 대한 진술조사 내용, 기타 관련자의 진술 등을 종합하여 사건 당시의 불법행위 여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망인을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거명자로 확인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나타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과 당시 정황에 더하여 앞서 든 각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망인의 부친 정○○은 1960. 6. 11. 망인의 피살사실을 신고하였고, 칠곡군수는 1960. 6. 24. 위 신고서를 첨부하여 서울특별시민의원내 양민피살사건 조사의원 윤○○에게 ‘과거 도민으로서 피살된 자 신고의 건’이라는 문서를 제출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망인은 대구10월사건의 관련자 또는 가담자라는 사정만으로 피고 소속 경찰관 등으로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살해당한 피해자인 사실이 인정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 소속 경찰 등이 망인을 정당한 이유 및 적법한 절차 없이 살해하여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고, 이로 인하여 위 희생자 및 그 유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제헌 헌법(1948. 7. 17. 제정되어 1960. 6. 15.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에 따라 그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위 희생자들 및 그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함.

 

법원은 피고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하여는 『원고의 이 사건 소가 희생자인 망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949. 6.경으로부터 5년이 훨씬 지난 후인 2012. 5. 24.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다. 그러나 한편,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따른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을 경우, 혹은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을 경우, 또는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 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다78852 판결 등 참조).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인정사실 및 앞서 든 각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국가적 혼란기에 경찰이나 군인이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저지른 위법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원고와 같은 희생자들의 유족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에 의하여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할 것인 점, ②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에 관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국가가 그 진상을 규명한 적이 없었고, 실제로 망인을 포함한 칠곡지역 주민들의 피살신고 사실을 칠곡군수가 양민피살사건 조사의원에게 제출하였음에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이전까지 별다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 ③ 국가적 혼란의 시기에 개인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하거나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이루어지기 어려운 점, ④ 나아가 이 사건은 국가권력이 학살을 자행한 반인권적인 중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점에서 공무원이 공무를 수행하면서 통상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일반적인 불법행위와 달리 볼 필요가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10. 3. 30.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나아가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피고가 오히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조직적・집단적으로 희생자들의 생명을 박탈한 후 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뒤늦게 그 유족들이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