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칼럼

대우 사태 본질을 보자

강병국변호사 2011. 6. 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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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우사태 본질을 보자
[경향신문]|2005-06-17|2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866자
남의 집 가계부가 어떻게 작성되든 간섭할 필요는 없다. 수입을 부풀려 흑자 살림살이로 꾸미든, 그 반대이든 이웃집에 피해를 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의 장부는 그렇지 않다. 투자자와 은행이 회사에 돈을 줄 때 보는 회계자료는 회사의 경영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회계조작으로 엉터리 성적표를 내걸고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사기에 해당한다.

대우사태의 본질은 분식회계에 의한 회사제도의 남용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회사제도의 남용은 사채시장에서 자본금에 해당되는 돈을 단 며칠간 빌려 회사설립등기를 한 후 빌린 자본금을 갚고 껍데기 회사를 이용하여 각종 거래를 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독점 이윤에 대한 탐욕과 함께 주식회사제도의 대표적 단점으로 꼽히는 사기의 횡행 현상은 분식회계에서 그 마각을 드러내는 셈이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사는 비결이 다름 아닌 분식회계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지난 4월29일 대법원에서 확정된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에 대한 형사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김우중씨는 1998년 1조원의 적자가 난 대우자동차에 1천억원의 흑자 결산을 지시하는 등 41조1천억원을 분식회계 처리하고 이를 근거로 금융기관을 속여 9조9천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또 영국 런던에 설립한 법인(BFC)의 30여개 계좌를 통해 97년 10월부터 99년 7월까지 수입서류 조작으로 26억달러를 해외로 빼돌리는 등의 수법으로 2백억달러(약 25조원)를 관리해 오면서 이중 상당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

김우중씨는 1967년 자본금 5백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한 이래 수출금융과 섬유쿼터에 힘입어 10여년 만에 40여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린 재벌 신화를 창조했지만 특혜와 문어발식 황제경영에 의한 졸속성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비단 대우뿐만이 아니다. 재벌, 중소기업을 불문하고 분식회계는 관행이란 미명 하에 업계에 만연된 현상이다. 금융감독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상장.등록기업은 지난해 5곳 중 1곳이, 비상장 기업은 10곳 중 9곳 이상이 매출 및 이익 부풀리기, 부채 축소 등의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월 제정되어 올해부터 시행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지난 3월 부칙 개정을 통해 지난해 말까지의 분식회계를 2006년 말까지 털어내는 조건으로 재벌에 면죄부를 준 것도 그 방증이다.

회계부정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성숙하였다는 미국에서도 엔론, 월드컴 등의 회계부정사건이 터져 월가를 강타했던 것이 불과 얼마전이다. 이러한 회계부정이 증권감독당국의 규제가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철학과 윤리의 빈곤에 있다는 진단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자본주의는 대자본의 질주를 허용하고, 부의 독점을 수반하는 불균형 체제이다.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과 대형 유통업체의 등장에 따른 구멍가게의 몰락이 이러한 불균형 성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조합과 독점규제법의 작용으로 자본주의의 극단적 폐해는 어느 정도 방지되고 있지만 배금주의.물신주의가 지배하는 한 회계부정과 같은 자본주의의 맹점을 근절시킬 방책은 발견되지 않는다. 금욕과 소명의식, 인문학적 지혜가 뒷받침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언제 어느 곳에서든 나락으로 떨어질 운명을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우사태가 IMF 관리체제하의 특수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김우중씨에 대해 공과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대우사태 직전 정부가 다른 재벌에 해 준 금융지원의 10분의 1만 해 주었더라면 대우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미국에는 없는 관치금융이 실패한 기업인에게 면피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한국경제는 자본주의의 철학 빈곤 외에 또 하나의 족쇄에 얽매여 있는 모습이다.

강병국
변호사